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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발효식품과 한국 전통 발효음식, 할머니의 항아리에서 배운 발효의 시간

by 캐리 2026. 9. 7.

세계의 발효식품과 한국 전통 발효음식, 할머니의 항아리에서 배운 발효의 시간

발효식품은 특정 나라에서만 만들어지는 음식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는 각 지역의 기후와 식재료, 생활방식에 맞춰 발전한 다양한 발효음식이 존재합니다.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치즈와 요구르트, 콩을 발효시킨 낫토와 된장,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킨 빵, 곡물이나 과일 등을 발효시킨 술까지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심지어 생선과 어패류, 고기까지 발효시키는 문화가 있습니다. 발효는 단순히 음식의 맛을 변화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식재료를 오래 보관하고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류가 오랫동안 활용해 온 식품 제조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발효식품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자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 할머니의 집은 작은 발효식품 공장과도 비슷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발효는 생활의 지혜였다

저희 할머니는 이북 출신으로 6·25전쟁을 겪으신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음식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하셨습니다. 음식을 버리는 것을 무척 아까워하셨고, 식재료가 있으면 최대한 오래 보관하면서 다른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세 살에서 다섯 살 무렵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할머니 집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주택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시멘트로 만든 집에 기와를 올린 모습이 아니라 어린 시절 제 기억 속에는 초가집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집은 정말 만능 집이었습니다. 뒷뜰에는 햇볕이 잘 드는 곳마다 커다란 항아리가 줄지어 있었고, 항아리 안에는 된장과 간장, 고추장, 소금 같은 식재료가 담겨 있었습니다.

창고 쪽으로 가면 분위기가 또 달라졌습니다. 젓갈과 김치가 있었고 막걸리도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마트에서 필요한 만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냉장시설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고, 발효시키는 방법이 식재료를 보존하는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발효는 음식의 부패를 무조건 막는 기술이라기보다, 특정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환경을 이용해 음식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보존성을 높이는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된장·간장·고추장, 항아리에서 만들어지던 우리 음식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을 이야기한다면 장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은 모두 콩을 비롯한 곡물과 소금, 미생물의 작용이 중요한 전통 발효식품입니다.

특히 된장과 간장의 기본이 되는 것은 메주입니다. 삶은 콩을 으깨서 덩어리 형태로 만든 뒤 건조하고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다양한 미생물이 관여합니다. 이후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키면서 액체 부분은 간장으로, 고형분은 된장으로 활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있습니다.

고추장 역시 단순히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고추장은 고춧가루와 찹쌀이나 멥쌀 등의 곡물, 메줏가루, 소금 등을 이용하고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서 특유의 단맛과 감칠맛, 깊은 향을 만들어냅니다.

저희 할머니 집에서도 이 과정이 일상이었습니다. 뒤뜰에 줄지어 있던 항아리는 단순한 저장용기가 아니었습니다. 각각의 항아리가 하나의 발효 공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합니다. 냉장고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온도를 맞출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는데도 계절과 날씨를 보면서 음식이 익는 시간을 조절하셨으니까요.

제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맛있는 메주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어린 저에게 할머니의 발효식품 문화가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바로 메주였습니다.

할머니는 처마 밑에 메주를 매달아 놓으셨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메주를 집 안 한쪽으로 옮겨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린 제 눈에는 메주가 왜 집 안까지 들어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메주가 보이고, 냄새도 나고,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정말 싫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메주가 결국 제가 좋아했던 된장과 간장, 고추장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메주의 냄새가 싫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냄새를 거쳐야만 만들어지는 깊은 장맛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효는 깨끗하고 향긋한 재료만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미생물이 활동하면서 식재료의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을 다양한 물질로 변화시키고, 그 결과 우리가 원래 식재료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향과 감칠맛이 만들어집니다.

할머니는 사 먹기보다 직접 만들기를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간식도 웬만하면 직접 만드셨습니다. 지금처럼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무엇이든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구황작물을 이용해 엿을 만들고 엿가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아이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간식이었습니다.

찐빵도 직접 만드셨습니다. 미리 빚어두신 막걸리를 넣어 반죽을 발효시키고, 직접 키우신 팥으로 앙금을 만들어 찐빵을 쪄주셨습니다.

그 찐빵은 시중에서 사 먹는 빵과는 맛이 달랐습니다. 막걸리를 이용한 반죽이 발효되면서 반죽의 향과 질감이 달라지고, 팥앙금의 담백한 단맛까지 더해졌습니다.

여기에도 발효가 숨어 있습니다. 빵 반죽에서는 효모가 당을 이용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고, 이 기체가 반죽 안에 머물면서 빵을 부풀게 합니다. 동시에 여러 향미 성분이 만들어져 빵 특유의 풍미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된장과 김치만 발효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막걸리와 빵까지 발효의 원리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계셨던 셈입니다.

막걸리와 술도 발효의 결과물이다

술 역시 대표적인 발효식품입니다. 막걸리, 맥주, 와인, 사케 등 세계 여러 지역의 술이 발효를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술의 종류에 따라 제조법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효모 등의 미생물이 당을 이용하면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 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특히 막걸리와 같은 전통주는 곡물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과정과 그 당을 알코올로 발효시키는 과정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누룩에 존재하는 다양한 미생물이 관여하면서 독특한 향과 맛이 형성됩니다.

할머니가 직접 빚으셨던 막걸리를 생각하면 발효라는 것이 단순히 과학책 속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먹었던 음식 하나하나에 오랜 시간 축적된 생활의 지혜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365일 냉동실에 있던 할머니의 식혜

할머니는 식혜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 냉동실에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식혜가 있었습니다.

식혜 역시 엿기름을 이용해 만드는 전통적인 음료입니다. 엿기름의 효소가 밥의 전분을 분해해 당을 만들어내면서 특유의 달콤한 맛이 생깁니다.

식혜는 김치나 된장처럼 미생물이 직접 활발하게 증식하는 발효식품과는 제조 과정이 조금 다릅니다. 흔히 식혜를 발효음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식혜의 대표적인 단맛은 엿기름 효소가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당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발효'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전통음식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음식마다 관여하는 미생물과 효소, 온도, 시간, 재료가 모두 다릅니다.

김치부터 낫토와 치즈까지, 세계는 발효음식으로 연결된다

한국에는 김치와 된장, 간장, 고추장, 젓갈 등이 있고 일본에는 낫토와 미소, 간장 등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치즈와 요구르트, 사워크라우트 등이 오랫동안 만들어져 왔고, 인도에서는 발효 반죽을 이용한 여러 음식이 발달했습니다.

빵 역시 세계적인 발효식품의 하나입니다. 사워도우처럼 효모와 유산균 등이 관여하는 발효 방식도 있습니다.

생선이나 어패류를 발효시켜 독특한 맛을 내는 음식도 여러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육류 역시 일부 지역에서는 발효와 숙성 기술을 이용해 독특한 풍미와 저장성을 만들어왔습니다.

재료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인간이 식재료를 그냥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미생물이나 효소가 만들어내는 변화를 이용해 새로운 맛과 향, 질감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이국적인 발효음식에 끌리는 이유

요즘에는 한국의 전통 발효음식보다 낫토나 치즈, 사워도우, 다양한 발효 음료 등 이국적인 발효식품에 관심을 갖는 젊은 세대도 많습니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해외여행과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다른 나라의 식문화가 빠르게 소개되면서 예전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음식도 쉽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변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의 발효문화를 접하다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발효문화가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지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낫토를 먹어보고 치즈를 즐기는 경험이 한국의 된장과 간장을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에도 이런 발효음식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발효식품이 건강에 중요한 이유, 하지만 무조건은 아니다

발효식품은 건강한 식생활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일부 발효식품에는 유산균과 같은 미생물이 존재하거나 발효 과정에서 다양한 대사산물이 만들어집니다. 또한 김치와 같은 발효 채소는 식이섬유와 여러 식물성 영양성분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발효식품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건강 효과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발효 방식과 균주, 제조 과정, 숙성 정도가 다르고 음식에 따라 당류나 지방, 나트륨 함량도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김치는 채소를 기반으로 하지만 소금과 젓갈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트륨 섭취량을 고려해야 합니다. 된장과 간장 역시 발효식품이라는 장점만 생각하기보다 염분 섭취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치즈도 단백질과 칼슘 등의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지만 종류에 따라 지방과 나트륨 함량이 높을 수 있습니다. 발효식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많이 먹는 것보다 음식의 특성과 섭취량을 함께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결국 건강한 식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발효식품 하나를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식품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항아리에는 음식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 집에 있던 항아리가 그렇게 특별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뒤뜰에 늘 놓여 있는 큰 항아리였고, 처마 밑에 매달려 있던 메주는 보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항아리 안에는 우리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는 시간이 들어 있었습니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은 메주에서 시작되었고, 김치는 채소와 양념이 만나 숙성되면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습니다. 젓갈도 발효를 통해 독특한 감칠맛을 얻었고, 막걸리는 곡물이 미생물의 작용을 거쳐 술이 되었습니다. 직접 키운 팥으로 만든 찐빵도 막걸리를 이용한 발효 반죽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런 과정을 어려운 과학 용어로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계절을 보고, 냄새를 보고, 맛을 보고, 음식이 익어가는 시간을 몸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전쟁을 겪고 냉장고가 없던 시대를 살아오면서 음식 하나를 귀하게 생각했던 경험이 발효음식이라는 형태로 남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냉장고와 냉동고가 있고, 마트에 가면 세계 각국의 발효식품을 쉽게 살 수 있습니다. 낫토도, 치즈도, 사워도우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가끔 할머니의 항아리가 생각납니다.

메주 냄새가 그렇게 싫었던 어린아이가 이제 와서야 그 냄새가 맛있는 된장과 간장, 고추장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발효는 결국 '기다림'의 음식입니다. 재료를 준비하고, 적절한 환경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처음에는 없었던 맛과 향이 생겨납니다.

어쩌면 할머니가 남겨주신 가장 큰 음식 유산도 바로 그것인지 모릅니다.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 그리고 그것을 지켜온 사람들의 생활 속 지혜가 더해져 만들어진다는 것.

세계 곳곳의 발효식품을 맛보는 것도 좋지만, 우리 식탁 한쪽에 오래도록 자리했던 김치와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은 음식들을 다시 바라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냄새 때문에 싫었던 메주가 이제는 그리운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주에서 시작된 장맛을 생각하면, 할머니의 항아리에는 음식만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가족의 기억까지 함께 숙성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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